기대한 것에 조금은 미치지 못하는 책이지만 그의 나이가 이미 74세 임을 생각하면,
'그 나이에도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니...' 라는 축하를 충분히 할 만한 합니다.
그의 책 내용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을 보내드립니다.
차분하고 의미있는 그런 시간 가지시길...
여러분 아시지요. 우리 모두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토요일 아침에 보냅니다.
1. 오랫동안 나는 어찌보면 거짓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던 탓이다.
젊은 시절에는 '술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교적인 사람이 되려 했고,
한때는 다부진 석유회사 간부가 되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항상 나와 뜻이 같은 것도 아닌 타인들을 때로는 억지로 끌고 가는,
의욕과 야심만 앞서는 리더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본 모습대로 살기로 마음먹으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얼마나
마음이 놓이든지, 지금도 가끔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하고 바랄 때야
있지만, 더 이상 불가능한 소망에 헛되지 매달리지는 않는다.
2. 사람들은 분명 특정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이런 성향을 좀더 그럴듯하게 범주화한다.
말콤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메이븐(Maven), 커넥터(Connector),
세일즈맨(Salesman) 성향이 어느 정도 혼합되어 있다.
아주 단순화하여 말하면 메이븐은 머리가 좋고 지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
커넥터는 사교적이어서 사람들과 교류가 활발한 사람, 세일즈맨은 설득에 능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세 가지 성향이 혼재되어 있지만 보통은 어느 한 성향이 다른 성향보다 강하다는 것이
말콤의 주장이다.
3. 우선 우리는 유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4.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채워간다.
나이를 먹고 본인에게 맞는 삶의 영역을 찾아가면서 정체성은 점점 견고해지고 일관성을 갖게 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말콤 글래드웰의 표현을 빌자면-
메이븐 기질이 강해서 아이디어와 지식에 관심이 많았으나 실제로는 커넥터의 삶을
갈망하고 세일즈맨을 꿈꾸며 못내 아쉬워했던 것 같다.
5. 하지만 나는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성공한 기업가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열정이 있으면 타고난 기질로 보아 영 거리가 먼 사람도
세일즈맨과 커넥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충분히 좋아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거의 모든 것을 배우고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진짜 문제는 초기 반평생을 동안 맞지 않는 일에 종사했던 것이 아니라,
하는 일에 충분한 열정을 느끼지 않았다는 데 있다.
6. 아내(엘리자베스 핸디)는 커넥터와 세일즈우먼의 기질을 타고난 데다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다른 재능도 많았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과 결혼한 것은 내게 정말로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아내의 재능 덕분에 배우자인 내가 오히려 나태해진 것이 그렇다.
7. 지금 생각해 보면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진정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죽는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삶이란 정체성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이고, 우리는 사다리를 오르면서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발견해간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메슬로우는 이를 '욕구의 위계'라고 불렀지만,
나한테는 오히려 사다리에 가깝지 않나 싶다.
8. 이베이의 공동창업자인 제프 스콜은 아버지가 말기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의 대화를 평생 간직하고 산다.
당시 겨우 열네 살이었던 제프에게 아버지는 "곧 죽는다는 사실은 두렵지 않다면,
삶에서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경험하기 전에 죽을까와 두려웠던 것이다.
다행히 진단이 잘못되었던 탓에 제프의 부친은 한 번 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제프의 부친처럼 운이 좋지는 않으리라.
-찰스 핸디, <포트폴리오 인생>, pp.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