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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경영/벤치마킹

내면의 동기부여! 자율성으로부터 나온다

내면의 동기부여! 자율성으로부터 나온다

의욕상실 직원이 한 명 있다면 그는 회사에 어느 정도 손해를 끼칠까?
반대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열정으로 일하는 한 명의 직원은 회사 이익에 어느 정도 기여할까?
재무제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손해와 이익의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상 속에서 그 답을 상당 부분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게 하려면 보상을 많이 해주면 된다는 것이 일반적 믿음이지만,
‘보상을 멈추면 동기도 멈춘다.’는 불편한 진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동물원에 가면 물개 쇼를 구경할 수 있다. 먹이통을 든 조련사는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익숙하게 쇼를
펼친다. 조련사의 역할은 물개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다. 굶주린 물개 입에 생선을 한 마리씩 떨어뜨려 주면 물개는 생선을 더 받아먹기 위해 온갖 재롱을 떤다. 지느러미로 손뼉을 치고,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관객에게 인사를 하며 고무공으로 축구를 하기도 한다. 물개 쇼를 보면서 얻는 교훈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다.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 보상을 해주면 그 행동이 반복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보상이야말로 뛰어난 동기부여 기법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조련사가 사라지는 순간 물개 쇼도 끝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고기를 주던 조련사가 사라지면 물개는 더는 지느러미 박수를 치지 않고 관객에게 꼬리를 흔들며 인사하지도 않는다. 물개에게 있어서 보상은 어떤 행동을 할 가능성을 높여주지만, 그것은 보상을 줄 때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나 학교의 학생들 그리고 회사의 직원들은 ‘물개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하는데서 고민이 시작된다. 40여 년간 인간 행동의 동기를 연구해온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의 에드워드 데시 교수가 매우 의미 있는 실험을 하였는데, 그 실험의 주제는 ‘보상 없이 기꺼이 해오던 행동에 보상을 주기 시작하면 내면의 동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였다.
대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성인들도 재미있어하는 블록 퍼즐로 비행기나 강아지 등의 작품을 만들게 하면서 한 집단에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소액의 상금을 주고 다른 집단에는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30분 정도의 퍼즐 게임이 끝나고 휴식시간을 주었는데 이 실험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휴식시간이었다. 금전적 보상을 받은 학생들은 자유시간이 되자 대부분 퍼즐 놀이를 바로 그만두고 잡지를 보거나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자체로 흥미로운 활동이었던 퍼즐이 보상을 얻기 위한 도구적 활동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비슷한 후속실험이 학교 신문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늘 무보수로 일하던 학생 기자들에게 기사를 쓸 때마다 돈을 지급하였더니 일단 돈을 받기 시작한 학생 기자들은 활동 자체에 관한 관심이 전보다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보수가 중단되자 더는 전처럼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비슷한 실험을 반복했는데 항상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금전적 보상은 사람들의 ’내면의 동기‘를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남들을 위협한다. 공부를 안 하면 TV를 못 보게 하겠다고 위협하고, 제 시간에 일을 마치지 못하면 해고해버릴 거라고 위협하면서 그것이 효과적인 동기부여 방법이라고 믿는다.
처벌을 회피하게 함으로써 동기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연구진이 다시 퍼즐 게임을 이용해서
위협이 내면의 동기부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해 본바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퍼즐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면 벌을 준다고 위협하는 방식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실험을 한 결과 피험자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퍼즐을 훌륭히 완성했지만 그 경험은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위협은 금전적 보상과 비슷하게 작용해 퍼즐 완성을 독려하는 역할은 했지만 그 자체로 즐거워서 하고 싶다는 마음을 사라
지게 만들었으며 그와 비슷한 통제 방식인 감시, 평가 등도 모두 내면의 동기를 훼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협’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그리고 빈번히 쓰이고 있는 동기부여 방법이라는 점에서 다소 씁쓸한 결과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쟁이 보편화하여 있다. 학교는 성적을 통해 경쟁을 시키고 기업은 누가 가장 많은
판매량을 올리는지, 또는 누가 고객서비스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지 가리는 방법을 통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경쟁을 하게 되면 활동 자체보다는 승리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쏠리기 때문에 금전적 보상을 줄 때와 마찬가지로 활동 자체는 관심권 밖으로 멀어지고 내면의 동기가 훼손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한다.
반면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서, 경쟁이 내면의 동기를 높여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데시 교수는 이러한 견해 차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퍼즐 게임의 방식을 약간 바꿔 실험했다. 피험자들과 조교를 나란히 앉혀 세 가지 작품을 만들게 하면서 피험자 절반에게는 조교보다 빨리 퍼즐을 완성해 이기는 것이 목표라고 하였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경쟁이나 승리라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최대한 빨리 퍼즐을 완성하라고만 하였다. 그 결과 경쟁을 붙인 피험자들은 경쟁 없이 최선을 다한 피험자들에 비해 내면의 동기가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경쟁에 이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쟁 경험이 흥미로운 과제에 대한 내면의 동기를 훼손했던 것이다.

금전적 보상, 위협 그리고 경쟁이 모두 내면적 동기를 약화시킨다면 내면의 동기를 높일 수 있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이번에도 퍼즐 실험을 통해 검증된 결과를 인용해 본다. 두 집단에 퍼즐 게임을 하도록 하면서 첫 집단의
피험자들에게는 어떤 과제를 얼마의 시간 동안 풀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게 했고 다른 피험자 집단에는
첫 집단이 정한 과제와 작업시간을 일방적으로 부여했다. 그 결과 똑같은 과제를 똑같은 시간에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집단 간에는 차이가 발생했다.
자율과제와 시간을 스스로 선택한 집단은 그것을 일방적으로 부여받은 집단에 비해 퍼즐을 더 오래 가지고
놀았고 마음에 들어 했다.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스스로 선택을 하게 했더니 피험자들은 똑같은 경험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내면의 동기도 강해졌다. 문제의 핵심은 성과 통제의 관계다.
똑같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면서
자율성을 인정받으면 집중도는 훨씬 높아지며 더 나아가 그 과제를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서 학교나 기업이 채택하는 방식은 그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인간은 더욱 더 통제 받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 받아야 하며 해놓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실험에서도 그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통제와 훈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칫 인간의 경험을 비하하고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느끼려 애쓰는 경향이 있다.
즉 자기 행동이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행동의 동기가 외부의 통제 때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자발적 요구로부터 나왔다고 느끼기를 원한다.
이는 많은 심리학자(리처드 드샴, 헨리머리 등)들이 동의하고 있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동기부여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상하 관계에서 윗사람들, 즉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선택권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현장 학습을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글쓰기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학생들이 선택하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한 기업에서는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 직원들이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할 바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더욱 전념한다.
자기에게 선택권을 준 사람이 자신을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해주고 있음을 느끼기에 내면적 동기가 고양되고 타인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잘해내는 것이다.

* 참고자료
- 마음의 작동법(에드워드 L 데시)
- 최고의 동기부여(스가와라 유코)
- Motivational Interviewing (William R. Miller, Stephen Rolln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