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과 철학의 만남
뇌과학과 철학의 만남
지난 12월 1일 중앙대학교에서 중앙철학연구소와 마음연구회 공동 주최로 제2회 비교마음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비교마음학이란 마음에 관한 연구의 관점이 다양하고 그 배경이 되는 학문적 맥락 역시 다양한 까닭에 상호 비교를 통한 이해와 소통을 추구하기 위한 마음 연구의 방법론이다. 이 자리에서 미국, 홍콩, 일본, 대만, 러시아, 태국 및 한국의 학자들이 마음에 관한 연구의 다양한 관점들을 비교하고 토론했다.
신경철학 분야를 개척한 패트리셔 처칠랜드 교수
현존하는 마음에 관한 연구에는 매우 다양한 맥락이 존재한다.
동양에는 불교의 선禪이나 유식唯識의 전통이 있고, 유교에는 심학心學의 전통이 존재한다.
그리고 서양에는 철학과 심리학, 현상학 등이 중요한 맥락을 형성하며, 그 안에 또 많은 갈래가 존재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인지과학이 마음에 관한 학제 간 연구의 방법을 이끌어왔고,
최근에는 뇌과학/신경과학이 내놓는 뇌와 신경에 관한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들이 마음에 관한
기존의 가설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의식을 다루는 철학적 관점과 이론 역시 근본적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요구의 강도가 증가하는 것이 사실이다.
2011년 비교마음학 국제학술대회의 발표자이기도 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이고(UC샌디에이고)의 패트리셔 처칠랜드 교수는 신경철학 분야를 개척하여 새로운 철학적 논의를 주도하는 학자이다.
그의 저서인 《뇌과학과 철학》(Neurophilosophy)에 나타난 신경철학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① 심리 과정은 뇌 과정이다.
②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상호 진화로 나타날 이론체계는 통속 심리학보다 우수하다.
③ 신경계의 구조와 구성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않고서 마음과 뇌에 대한 올바른 이론을 고안할 수 없다.
여기에서 심리 과정을 뇌 과정으로 본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인간의 사회성,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 연합, 협동, 타인의 보살핌 등은 넓게 본다면 약 3억 5천만 년 전
포유류가 등장할 때 존재했던 진화적 압력과 그에 따른 포유류 뇌의 진화적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포유류에게 일반적인 타자 보살핌의 작용은 실은 펩티드(아미노산 중합물)인 옥시토신의 기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도덕성의 신경적 기반을 중시하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 신경철학이다.
패트리셔 처칠랜드의 최근 저서인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는 자기 돌봄과 타자 돌봄, 협동과 신뢰, 유전자와 뇌와 행위의 연결망, 사회적 삶의 기술들, 도덕은 규범이 아닌 기술로 간주함, 종교와 도덕성 등에 관한 논의를 담으면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가치들이 사실상 뇌에 기초한 것이라는 가설을 확립
하고 있다.
이러한 가설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나 도덕성, 사회성 등에 관한 더욱 적절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적 입장은 인간의 의식과 활동은 뇌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다는 유물론적 입장으로 분류된다.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는 뇌과학과 철학의 관계
그러나 처칠랜드의 신경철학과는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논의도 발전하고 있다. 뇌과학이 밝혀내는 경험적 증거는 여러 맥락으로 나뉘어 발전해온 철학적 담론을 통합하거나 잠재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 성찰과 평가를 더욱 다방면으로 새롭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철학적 담론의 갈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철학적 담론이란 뇌과학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관한 언어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한 언어들은 뇌과학의 경험적 자료와는 구별되는 ‘마음 경험’을 그 자료로 삼는다.
즉 감정과 비교, 추론, 판단 등의 마음 경험들이 그것인데, 마음 경험과 마음 관련 용어들 사이에는 일종의 상호 인과적인(reciprocal) 관계가 있다.
즉 마음 경험이란 마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온갖 내성적 경험들을 말하고, 그 경험들이 자기지시적 작용을 하면서 그 용어들은 더욱 굳게 정착된다. 언어권마다 마음에 관한 이해와 개념의 체계가 독자적인 맥락을
형성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따라서 마음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서 논의하는 경우에도 그 관점과 접근법에 차이가 있다.
동양의 전통사상으로서 상호 유사성이 높은 편인 불교와 유교라고 할지라도 유교에서 사용하는 접근법이
불교의 그것과 다르고, 서양철학에서는 심리철학의 접근법과 현상학의 접근법에 서로 차이가 있다.
뇌과학/신경과학의 성과를 중시하여 그것을 수용하고 응용하더라도 철학적 논의의 맥락은 단순하게 정리
되지 않으며 또한 정리될 수도 없다. 그러한 까닭에 뇌과학과 철학의 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앞서 살펴본 신경철학 외에도 신경생물학과 현상학이 접맥된 신경현상학, 윤리학에서의 신경윤리학의 등장은 뇌과학의 성과를 철학에 접목시키려는 시도이다. 그 외에 불교 측에서는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신경현상학과의 연관성을 높이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유교의 심학 내지 수양론의 방법론은 뇌과학적 증거와 접맥함으로써 새로운 논의의 가능성을 열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뇌과학이 발전한다고 해서 철학의 모든 것이 뇌과학/신경과학 이론으로 환원되거나, 그로 인하여 기존의 철학의 차별적인 이론들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은 매우 단순한 생각이다.
오히려 철학은 뇌과학/신경과학의 성과는 공유하되 그것을 각각의 전통적 맥락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응용
할 뿐 아니라, 신경과학과 철학의 통합적 패러다임까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경우 신경철학이 하나의 예가 되겠지만 신경현상학 역시 그러한 예가 된다.
따라서 철학적 논의의 틀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 철학적 논의의 틀이란 다름 아닌 과학적 연구 성과에 근거하여 의미와 가치를 따지는 논리의 개발과 관련되어 존재한다. 여기에 3인칭 방법론과 1인칭 방법론을 적용하는 학문적 입장도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이처럼 뇌과학/신경과학의 성과에 근거하더라도 철학에는 다양하고 대립적인 흐름이 다시 형성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3인칭 방법론의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뇌에 대한 관찰과 해명을 통해서 인간의 의식 혹은 마음에 관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현상이 있다. 리타 카터Rita Carter의 《뇌 맵핑마인드》(Mapping the Mind)나 박문호의 《뇌, 생각의 출현》이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
이를 철학적 관점으로 정형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신경철학이다. 그들은 뇌의 신경작용과 신경체계를 의식이나 감정 혹은 생각이 발생하는 근원으로 간주할 뿐 아니라, 의식에 관한 모든 것을 뇌과학의 구조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일종의 뇌결정론적 관점까지도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뇌과학의 함정》(Out of Our Heads)의 저자인 알바 노에Alva Noe의 견해가 그러하다. 그는 단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머릿속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의 인지 시스템인 뇌를 인간 머리 밖의 몸이나 환경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더 큰 시스템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다. 그에 의하면 뇌와 신경이 인지 작용과 생명활동의 중요한 근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뇌/신경이라는 물질이 곧 마음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에 해당한다.
즉 네드 블록Ned Block이 말하는 접근적 의식(access consciousness)과 현상적 의식(phenomenal consciousness)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양쪽 모두 의식이라는 내적 경험을 지칭하지만, 전자가
3인칭 방법에 의하여 포착된 의식이라면, 후자는 1인칭 방법으로써 포착되는 의식이라는 구별이 가능하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현상학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후자에 의하면 마음에 관한 이해는 마음으로써만 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며, 뇌과학/신경과학의 성과가 반드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결정적 지식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견해는 근거가 부족한 것이 된다.
저널리스트 섀런 베글리의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Train Your Mind, Change Your Brain)는 뇌의 가소성(plasticity)에 관한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뇌 결정론적 사고를 부정하면서, 뇌의 작용과 뇌 바깥의 작용/요소들(마음 행동) 간의 상호 의존적이며 상호 인과적인 관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는 뇌가 인간의 언행과 습관에 의해서 개조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는 자기 습관이나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인간이 질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뇌과학/신경과학의 방법으로 설명하고 지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불교나 유교가 추구했던 수양법이 뇌과학/신경과학의 방법을 통해서 지지되고 있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도 시사한다.
그리고 신경현상학과 관련하여 달라이 라마와 함께 생명과 마음 연구모임에 참여한 바 있는 인지과학자
중 한명인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신경현상학의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신경망 연결이론에 근거하여 두뇌 웹(Brain web)이론을 구성하고, 경험의 체화이론에 입각하여 신경현상학의 틀을 정립했을 뿐 아니라, 뇌의 신비스런 기제를 연구함으로써 뇌를 포함하는 ‘생명의 전 체계’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심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중시하였다.
특히 ‘생명은 오직 생명에 의해서 알 수 있다’, 즉 생명현상으로서의 마음이란 오직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는 의미의 바렐라의 1인칭 방법을 중시하는 신경현상학의 입장은 존재론적 논의보다는 생명 자체에 대한 현상학적 인식과 발달에 중점을 둔다.
이는 마음 자체의 경험이 생명현상의 내용이지 3인칭적 관찰이 마음 경험의 내용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마음에 대한 자기 통제와 조절이 가능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생명체 자체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유교의 수양론에서 마음을 통해 마음을 인식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이와 같은 생명 경험의 현상적 인식에 해당되며 따라서 바렐라의 방법과도 통한다.
뇌과학은 철학의 중요한 소재
이와 같이 뇌과학/신경과학이 진전하면서 다양한 철학적 논의가 양산되는 것을 본다면, 뇌과학/신경과학의 성과는 철학적 논의에서 결여될 수 없는 중요한 학문적 소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또 처칠랜드의 신경철학이나 바렐라의 신경현상학이 공유하는 신경과학적 성과들에도 주목한다면,
전통적인 철학적 가정이나 이론에서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할 사항들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뇌의 신비를 벗김으로써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경이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그로 인해서 마음에 관한 존재론적 논의에 모종의 확신을 더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나 생명의 방식을 전적으로 바꾸도록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철학적 논의의 틀은 변화하더라도 그 유효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유권종 중앙대학교 인문대학장, 철학과 교수, 마음연구회 회장
[출처] 브레인월드 > 뇌과학/뇌의학 > 뇌과학과 철학의 만남
http://www.brainmedia.co.kr/BrainScience/8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