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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테르와(Terroir), 그리고 기본의 중요성 - 예병일의 경제노트 -

기환짱 2008. 7. 21. 06:54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8.6.24)

영어에는 '와인 메이킹'(wine making)이란 말이 있지만, 프랑스어에는 없다.
이 말에서, 미국인들은 와인을 얼마든지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하지만 진지한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은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만들어지는 것으로 여긴다.
순서에 맞게 자신이 거들기만 하면 와인 스스로가 잘 알아서 상태가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와인 메이킹이란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포도 재배를 중시한다. 좋은 포도를 얻어야 좋은 와인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좋은 와인의 구성요소 중에서 85퍼센트 이상이 포도이다. 와인 메이킹은 고작 15퍼센트 안쪽이다.
이 생각은 유럽의 유명 와인회사 주인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회사 안젤로 가야가 그랬고, 프랑스 최고의 와이너리 샤토 라플레르 성주가 그랬고,
독일 최고의 와인회사 에곤 뮬러가 그렇게 고백했다.


"와인의 세계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법이 없다..."

저는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육과 관련한 사회이동에서는 그렇지요. 그런데 와인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기본'의 중요성을 떠올렸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와인이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합니다.
'기술'이나 '기법'만으로는 안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지요.
훌륭한 요리가 결국 신선한 재료에서 나오듯이 와인도 좋은 포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결국 와인의 '기본'은 포도인 셈입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나쁜 포도로 좋은 와인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좋은 포도는 좋은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니, 결론적으로 좋은 와인은 좋은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어에는 영어의 '와인 메이킹'이라는 단어 대신, '테르와'(Terroir)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포도밭의 토양과 자연환경의 상호작용 전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은 이 테르와에 잘 맞는 포도를 재배해 좋은 와인을 빚는 것이지요.
프랑스 보르도의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부르고뉴의 피노 누와,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 등이 그 지역의 테르와에 맞는 포도품종입니다.

"해당 테르와에 맞는 품질 좋은 포도만이 고급 와인으로 '진화'할 수 있다..."
흥미로운 와인의 세계에서 '기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